융릉과건릉 유적지 명승지 탐방 여행 <경기도 화성시 갈(가볼)만한곳(데,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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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산책・등산

융릉과건릉 유적지 명승지 탐방 여행 <경기도 화성시 갈(가볼)만한곳(데,장소)>

융릉과 건릉

투어 장소 및 일시 : 화성시 융릉과건릉, 안녕불백 식당 | 2022년 4월 14일 일요일 12:00~15:00

 

<조선 왕릉 유적지 / 왕릉 묘지 / 견학 추천지>

융릉과 건릉 입구
돌담 너머로 보이는 한옥집
매표소 티켓
입장권 티켓

머리카락 한올도 날리지 않는 바람 한점 없는 뜨거운 날씨에 얼굴이 금세 달아오른다. 한 손으로 차가운 생수병을 이마에 대고 얼굴을 식히며 그늘을 찾는다. 주말이라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연인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나는 왜 여전히 혼자일까. (🐶🐮🐷 🦑도... 이하 생략)

 

⚠️ 입장료 : 1000원 (💡화성 시민일 경우 신분증 확인 후 50% 할인)

 

<화성 한옥 명승지 / 한국 한옥 유적지>

재실

왕릉의 터가 얼마나 기운 넘치는 땅인지 몸소 체험해 봐야겠다. 능(릉)으로 향하기 전에 매표소 근처에 있는 역사 문화관에 들러 가볍게 시청각 영상을 참고하고 이곳 재실로 왔다.

 

지금부터 유교 이념을 하늘처럼 떠받들던 조선시대로 들어가 보자.

 

📖 융릉과건릉의 뜻은 말 그대로 왕가의 무덤을 의미한다. 

융릉 : 조선 21대왕 장조(사도세자 1735~1762)와 현경황후 홍씨(혜경궁 1735~1815)능(무덤)
건릉 : 조선 22대왕 정조(1752~1800)와 효의황후 김씨의 능(무덤)

1789년 정조가 아버지인 장조의 융릉을 이곳으로 이전했고 장조도 이곳에 묻히고자 하여 그가 죽은후에 건릉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장조가 아버지의 무덤을 이전한 이유는 이곳이 좋은 터와 명당 이라는 이유에서다. 

재실(재실의 뜻)은 제사를 지내는곳. 우리가 명절에 큰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성묘에 가는 것과 같이 이곳에서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고 왕릉에가서 또 한번 예를 올리는 것 과 같은 순리다.

 

<한옥집 / 한국 전통 가옥>

한옥집 입구
활짝열린 한옥집 대문

💬

🙂이리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이러한 한옥집 마당에서 빗자루 질을 하는 노비의 신분이었을까 아니면 마루에 걸터앉아 곰방대나 물고 있던 양반이었을까. 아님 머지않은 시장터에서 새끼를 꼬아 만든 짚신을 팔던 상인이었을까. 어쩌면 포졸이나 협객이나 왕을 지키던 호위무사 였을지 모른다.

 

잠시 재미난 상상을 하며 뒷짐을 지고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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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당 전경
한옥과 마당의 정원 풍경
한옥의 기와 지붕
한옥 전경

깨끗한 마당에 주변 정원의 나무며 꽃이며 담벼락이며 부족함이 없다.

 

과거에 이 정도 집이면 지금의 한남 더 힐 클라스가 아니었을까? 요즘에 부쩍 이런 집에서 몇 달 동안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주변에 시끌벅적하고 여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 힘들고 지겹다.

 

한옥의 매력과 묘미란 이런 것이다. 새로운 정의가 아니라 조화로운 디자인을 추구하며 자연과 상생하는 것. 

 

<한옥 담벼락 / 한옥 돌담 / 한옥 기와집>

한옥 돌담과 외부 전경
한옥 돌담과 외부 전경

재실을 나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 담너머로 보이는 한옥과 깔끔하게 정리된 뒤뜰과 주변에 자라는 나무들이 너무나 조화스럽고 평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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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소나무

재실 뒤편에 있는 작은 언덕에서 오래된 소나무를 만났다. 자기 가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고 휘어지고 꺾여져 있는 모습이다.

 

그 어떤 자연 생명체도 모진 세월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다.

 

나도 언젠가 이런 몰골로 내 몸하나 가눌 수 없는 그날을 맞이 하겠지...

 

<융건릉 안내 표지 / 융건릉 안내 지도>

융릉과 건릉 가는길 안내판

먼저 융릉으로 가자. 그 이전에 관람 시간을 참고한다. 이 시간 안에 모든 관람을 마치고 나와야 한다.

 

🪧 융릉과건릉 관람 정보(시간)

2월~5월, 9월~10월 : 오전9시~오후6시

6월~8월 : 오전9시~오후6:30분
11월~1월 : 오전9시~오후5:30분

 

<융릉과 건릉 울창한 숲지대 / 융건릉 잔디밭 / 피크닉 가기 좋은 곳>

융릉 가는길의 울창한 숲과 잔디밭
울창한 나무숲
융릉 가는길의 울창한 나무숲
벤치에서 쉬고 있는 엄마와 아이들
융릉 가는길의 식수대
융릉 가는길의 화장실

융릉으로 향하는 산책로를 걷다 보니 어느덧 울창한 숲 속에 들어와 있었다. 고개를 돌려 이쪽을 봐도 저쪽을 봐도 초록색뿐이다. 빼곡히 들어선 울창한 나무와 잘 정돈된 푸른 잔디밭이 내 시야를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인다. 저마다 외치는 새들의 지저귐이 여러 갈래의 입자와 파동이 되어 숲 전체로 울려 퍼진다. 바람 한점 불지 않아 나뭇잎 하나조차 미동이 없다. 오솔길을 따라 숲 한가운데로 걷는다.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고를 반복하며 소리의 변화를 느껴본다. 이내 숲의 한가운데로 접어들자 여기저기 따로 놀던 새들의 울음소리가 한데 모여 어느덧 경쾌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일전에 올림픽공원을 다녀와서도 이와 유사한 감흥을 느꼈다. 하지만 올림픽공원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휴양림이라 일반 공원을 활보하는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들어선 순간부터 지금 까지 내가 왕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영엄하도다. 과연 명당 중에 명당이로다. 왕릉은 역시 다르구나.

 

<왕릉으로 향하는 다리 / 개울가를 건너는 다리>

원대황교(元大皇指)

융릉으로 향하는 작은 다리 앞에 멈춰 섰다. 그런데 이 한문이 무슨 뜻일까. 중간에 글자는 클 대(大)자가 분명하다. 고등학교 한문 시험 최하위권 실력을 뽐내본다. 

 

다리를 건너자 저 멀리 왕릉 일대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저기 사람들이 왜 몰려있을까.

 

📖 원대황교(元大皇橋)는 직역하면 '으뜸이 되는 대왕의 다리' 라는 의미다.

역사학자들의 해설에 의하면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행길에 건넜던 다리를 대황교로 불렀다고 한다. 말이 다리지 처음엔 작은 징검다리에 불과 했을 것이다. 


이후 해당 지점을 기점으로 수원시 권선구 대황교동 이란 지명이 생기고 그곳에 오랫동안 방치 되어 오다가 지금의 대황교동 주변에 공군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유실될 위기에 처하자 그곳에 있던 석재를 옮겨 이곳에 설치 했다고 한다. 

 

<우물이 있는 왕릉 묘지 / 우물이 있는 유적지 / 곤신지>

곤신지

우물이구나. 이 우물은 용의 여의주 형상을 본따 조성한 거라 한다. 수심은 깊지 않으며 물속엔 잉어가 있다.

 

해가 이 연못의 정 중앙에 들어오는 시기는 연중 언제이며 몇 번 정도일까?

 

<샤머니즘 풍습 / 고대 전통 문화 / 신라의 전통 건축물>

홍전문(紅箭門) 또는 홍문(紅門)
홍전문 혹은 홍살문

📖 좌 우측에 붉은색 기둥이 세워져 있는 이 구조물의 명칭은 홍전문 혹은 홍살문으로 불린다. 중간의 창이 태극문양을 관통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홍전문에 대한 자세한 문헌이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는 모르나 필자의 추측으로는 중간의 태극 문양은 삼족오를 상징하는게 아닌가 싶다. 삼족오는 하늘의 뜻을 지상에 전하는 매개자인 동시에 태양을 상징하며 태양은 곧 절대 권력을 지닌 왕을 의미한다.  

뒤로 보이는 정자각의 중심부와 태양의 심볼이 일직선 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사진 상으론 오른쪽 방향에서 조금 치우쳐 있으나 왼쪽으로 한두발자국만 움직여서 촬영하면 정확히 일직선이 되는 모습을 담을수 있다) 그 좌우측으로 5개의 화살이 있는 것으로 봐선 활을 잘 쏘는 구의 민족의 기세를 표현한게 아닌가 생각든다.

악귀를 내쫓는 우리 고대 전통 샤머니즘 풍습에 따라 조상들은 기둥이나 문에다 붉은색을 칠했다고 한다. 이런 전통 구조물은 유교적 잔재라 볼 수 없다. 이러한 양식과 풍습은 신라에 의해서 고구려나 백제로 전파되어 조선시대로 이어져 내려왔을 가능성이 높다.

 

<화성 유적지 명승지 / 왕의 묘지 무덤>

홍전문의 경계에서 바라본 정자각
항로와 어로

내 뒤에 함참 떨어져 있던 관람객들이 어느덧 나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핸드폰 사진의 구도가 마음에 안들어 다시찍고 다시찍고 몇십번을 반복한다. 겨우 한장 건지고 물 한모금 마시며 목을 축인다. 나는 정면으로 향하지 않고 발길을 돌려 왼쪽에 있는 작은 기와집으로 향한다.

 

📖 정자각으로 향하는 길은 형식상 두 길이다. 왼쪽에 움푹 튀어나온 길은 향로 라고 하여 향과 축문을 드는 신료들이 지나 다니는 길이고 오른쪽은 어로라고 하여 임금이 드나드는 길이다. 

 

<수라간 있는 명승지 유적지 / 수라간 체험>

융릉의 수라간
수라간 근처에서 바라본 정자각

잠시 눈을 감자 어디선가 소리가 소리가 들려온다. 부엌에서 나는 소리다. 가까이 다가가서 귀를 대자 나인들이 소곤댄다. 그리고 이내 솥뚜껑을 이리저리 휘여닫는 소리와 함께 크고 작은 식기들이 부딪혀 달그락 거린다. 바깥에서 들리는 인기척을 듣고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마루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교대로 걸터앉으며 엉덩이로 쓸고 다녀서 티끌 하나 묻을 새도 없이 반들반들하다.

 

📖 이곳은 수라간이다. 제를 올리기전 이곳에서 음식을 준비하여 상을 올린다. 수라는 본래 몽골계 언어로 '밥을 짓는' 의미라고 한다. 이 단어는 고구려나 백제를 통해 유입 되었을 것이다.

 

<사진찍기 좋은 명승지 / 경기도 견학 하기 좋은 장소>

융릉 정자각
옆에서 바라본 융릉 정자각

사선에서 보니 정자각의 자태가 꽤 넓고 웅장해 보인다. 좀 더 왼쪽방향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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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바라본 정자각
정자각과 그 뒤로 보이는 비각

정면의 모습과 옆에서 본모습에 차이가 있다. 지붕 아래로 내려오는 빗살무늬 개수를 세어보니 모두 38줄. 정면에 있는 빗살무늬의 개수보다 12개가 더 많다.

 

이 수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한옥 지붕 / 한국 전통 가옥 지붕>

정자각 뒤에서 바라본 내부 모습

정자각 기와 지붕의 고풍스러운 멋과 한국의 전통 문양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잠시 그늘에서 쉬기로 한다. 설마 벌써부터 국뽕에 취한건가? 여기서 잠들면 안된다. 정신 차리자. 

 

잠깐 고개를 돌려 작은 문틈 사이로 내부를 들여다본다. 문 앞에는 관광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제식과 차례상에 관한 절차와 예법에 관한 안내문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 홍살문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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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관 계급의 대신들
무관 계급의 대신들

정자각 지붕 위에 양쪽 끝에는 사대부를 대표하는 문관과 무관의 복장을 한 대신들의 조각상이 나란히 있으며 그들 뒤에는 입을 크게 벌린 용이 누워있다.

 

용이 이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의도인 걸까? 그런데 용의 인상을 가만히 보아하니 뭔가 마음에 안 들면 다 잡아먹을 기세다. 

 

<왕이 되는 방법>

정자각 정면에서 바라본 홍살문

💬

🧐 그대가 왕이 될 상인가? 

 

정자각 정면의 정중앙에 서서 홍살문을 바라보자 그 중앙에 태극 문양이 일직선상으로 놓인다. 그 와중에 꼬마 아이가 포즈를 취하고 있고 보호자가 그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소나무가 자라는 무덤 묘지>

융릉

발걸음을 돌려 융릉의 정면 앞으로 온다. 내 바로 앞에 울타리가 있어서 더 이상 접근은 불가하다. 지금 서 있는 지점보다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으며 양옆에 호위 무사를 대동한 채 잠들고 있다.

 

의도적으로 관리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능 바로 뒤에 자라는 소나무가 가장 높고 그 양옆의 소나무는 비교적 낮다. 이는 멀리서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왕릉의 비석 / 묘지 비석>

융릉 비각
융릉 비각
융릉의 비각

📖 (릉)의 오른편 아래에는 비각이 있다. 비각은 비석이 마련된 건물(누각)이란 뜻이다. 2개의 비석이 있다. 왼쪽이 왕의 비석이고 오른쪽은 황후의 비석이다. 아쉽지만 묘비의 새겨진 문장이 무슨 뜻인지 여기 저기 정보를 검색했지만 찾아내기 어렵다.

 

<비석에 새겨진 일대기>

융릉의 비석(뒤)

🧑🏻‍💻 비석의 뒤에도 한문이 세겨있다. 살아생전 업적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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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바라본 융릉 비각의 전경

소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융릉 비각의 전경을 담아본다. 매번 봐도 소나무와 한옥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제 자리를 옮겨야겠다. 이곳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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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위치 안내도

발걸음을 재촉하여 한참을 걸었더니 어느새 중간 지점에 도달했다. 사람들이 보는대서 함부로 축지법을 쓰면 안되는데 어쩔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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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과 홍살문

곧바로 건릉의 홍살문 앞에 도달하여 사진을 찍는다. 홍살문의 지붕이 약간 사선으로 놓여 있는데 왼쪽으로 조금 이동해서 보니 정자각이 아닌 건릉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잘 나오는 명승지 / 경기도 사진 찍기 좋은 곳(데, 장소)>

가까이에서 보니 참 아름답다. 빗살의 숫자를 세어본다. 하나 둘 셋... 스물여섯, 융릉의 정자각과 일치한다.

 

옛날에 이런 구조물을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빗살무늬 구조물의 용도는 바람이나 비를 막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나저나 이 곳 근처에서 이런 모양의 부채나 휴대폰 악세사리를 만들어서 팔면 잘 팔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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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가 기울더니 내 오른쪽 뺨을 내리쬔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이곳에 서서 멍하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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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의 비각
건릉의 비석

건릉의 비각에는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나 왕후의 비석이 보이지 않는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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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

의문을 뒤로한 채 다시 돌아 나온다. 오른쪽을 바라보자 건릉이 어렴풋이 보인다. 융릉에 비해서 규모는 작아 보인다. 다시 정자각으로 향한다.

 

<지붕에 자라는 와송 / 지붕 위의 식물 / 정자각 지붕 식물>

건릉 정자각 지붕에서 자라는 식물

💬

😮 어라 저게 뭘까?

 

정자각 지붕 위에 왕을 지키는 신하들 뒤로 식물이 자라고 있다. 새나 바람에 의해 날린 씨앗이 지붕위에 정착했나 보다. 예사롭지 않은 광경이다. 혹시 산삼이 아닐까? 좋은 징조로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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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 수라간
건릉 수라간의 굴뚝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부엌에서 맛있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 슬슬 미쳐간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점심도 안 먹었구나. 벌써 3시가 넘은 시간이다. 이제 그만 돌아가 볼까나.

 

<여운이 남는 명소 유적지 / 터가 좋은 명승지 / 풍수지리 왕릉>

몇 시간 전 재실에서 조선시대로의 회귀를 기대하며 유교 문화의 잔재를 느껴보려 했지만 그 시절의 파노라마에 매료되긴 힘들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영 모른다고 해서 여행의 의미나 가치가 반감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을 새롭게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역사적 사실을 배우고 인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바라보는지에 대한 역사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관련 영화 : 사도,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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